:::고향가는 멀기만한데...:::

중국 땅 조현에서 땅굴만 파다가 나중에 항주로 나와 무장해제를 하고 보니 해방이 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단다. 나는 무장해제를 하고 난 그 날, 바로 광복군에 입대를 했다. 패망한 일본군앞에 나타난 광복군이 한국인은 앞으로 나오시오.하고 외치는소리에 얼마나 뛸 듯이 기뻤는 지 모른다. 그 때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딱 두 사람 뿐이었다. 그 광복군에 입대하고 보니 다른 일본군 부대에서 나온 한국인들이 2,30명 정도 모여 있었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해방과 함께 나의 고생도 모두 끝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광복군에 입대하고 나서 한달 쯤 뒤 광복군은 해체됐고, 나는 한국국적을 가진 일본군 포로로 중국군에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해야만 했다. 길지 않은 포로 생활이었지만 옴이 옮아 죽도록 고생했던 시기였다. 발가락에서 부터 머리 끝까지 전신에 퍼진 옴때문에 잠도 청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포로 수용소에서 풀려난 나는 미군 군함 LST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조국 땅에 발을 디딘 내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광복군 모자에 일본 군복을 입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기차를 이용해 서울로 올라온 나는 우선, 동성학교로 가서 무사히 귀환했음을 학교 측에 알리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평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해주 쯤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붙들리고 만 것이다. 고향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 할 줄은 몰랐다. 그 당시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의 군사 분계선이 설정돼, 미국과 소련 두 나라 군대가 남과 북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며칠동안 러시아 군의 포로가 돼 사리원에서 석탄 옮기는 일을 해야 했다. 가까스로 풀려난 나는 먼저 평양으로 가서 평양교구장이었던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를 만나 귀환 소식을 전하고, 신의주행 기차에 올랐다. 이제는 정말 고향 집에 가는가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또 뜻밖의 일을 당했다. 이번에는 북한의 보안대에 체포됐다. 내가 광복군에 입대했었다는 이유로 나를 유치장에 가둬버렸다. 그 당시 유치장안은 온통 학생들로 가득했다. 연유를 알아보니 그 당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의주학생 사건에 관련된 이들이 끌려온 것이라고 했다. '신의주 학생사건'은 1945년 11월 23일 북한의 공산화를 위해 온갖 강압정책을 펼친 소련군정, 그리고 강간과 약탈 등을 일삼는 소련군의 만행에 분노한 신의주의 학생들이 일으킨 의거를 말하는데, 이로 인해 23명이 피살되고 7백명이 넘는 이들이 부상당했던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애국지사와 시민들이 학생들의 궐기를 배후 조종하고, 교사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됐다. 사흘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난 나는 그제서야 가족의 품으로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고향 집에 도착하고 보니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가 살아돌아왔으니 말이다. 전쟁에 나간 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돌아오는데 연락도 없이 내가 귀환하지 않자 우리 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나의 연미사까지 봉헌했었다고 했다. 이제나 저제나 동네 어귀에서 애타게 나를 기다리던 고모와 나의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뻐했고, 나도 모처럼 편안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고향 신의주로 가는 나의 여정은 이처럼 험난하고 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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