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돌아온 나는 1947년 원산의 덕원신학교에 복학했다. 그 시절 덕원신학교의 교사들은 대부분 독일 신부들이었다. 독일 신부들은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신부들과는 달리 비교적 학생들에게 관대한 면이 많았다. 엄격하게 규율을 따지고 처벌하기 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규칙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교장 선생이었던 안셀모 로멜(Anselmus Romell) 신부의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늦게 교실에 들어갔다. 지각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나는 급한 마음에 교실문을 열었는데, 교실 문짝이 덜컹거리며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수업중이던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됐다. 수업에 방해를 받아 몹시 화가 났을 법한데도 교장 신부님은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죠."라고 말했다. 신부님의 이 말에 나는 "예! 우리 다같이 공부합시다"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신부님은 수업에 방해가 되니 문을 조용하게 닫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내가 그 말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안셀모 로멜 신부님은 야단칠 일이 있더라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유머러스하게 학생들을 타이르곤 했다. 그 당시 신학교에서는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교회의 대축일날에만, 신학생들에게 술이나 담배를 나눠줬다.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함꼐 공부하던 신학생들은 담배가 궁금해지면 종종 학교 뒷산으로 몰래 올라가 담배를 태우고 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