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만난 이태리 수사:::

항주에 머물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나는 멀리서 들리는 대포소리와 총소리에 놀라면서 언제 닥칠 지 모를 전 쟁에 대한 공포에 떨곤 했다.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전쟁으로 삭막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부대원들은 인근 들녘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하루는 부대원들과 함께 풀밭에 누워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멀리 검은 색 수단을 입은 외국인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외국인이 분명히 사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향해 주저없이 달려갔다. 힘든 부대생활에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전장에서 지금이 아니면 고해성사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신학교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고해성사를 보지 않았던가! 외국인에게 나는 라틴말로 Esne tu sacrdos? (가톨릭 신부입니까?)Ego sum seminarista. (나는 신학생입니다.)하고 외쳤다. 이어 나는 Ego volo confessionem facele. (고해성사를 보고 싶습니다.)하고 덧붙였다. 함께 있던 일본 군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저기서 무슨 말이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보니 그 외국인은 상해의 진단대학 교수로 와 있던 이태리 수사였다. 비록 고해성사를 볼 수 없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전장에서 신앙생활에 목말라하던 내가 수도자를 만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살인하는 죄만은 짓지 않게 하소서!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우리 부대가 머물던 조현의 남쪽에 자리한 신창이라는 작은 마을로 작전을 나갔다. 작전이라고 해봐야 동네 사람들이 피난을 가 텅빈 마을을 뒤져서 쌀이나 곡식, 돼지, 야채 등을 모으는 일이었다. 동료와 함께 마을 곳곳을 수색하던 나는 작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큰 쌀독이 있어서 뚜껑을 들춰보는데,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장전된 총을 들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적군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그 집 할머니와 딸이 내 눈앞에서 벌벌 떨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방아쇠를 당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목자의 길을 택했던 내가 하마트면 무고한 사람을 죽일 뻔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무엇보다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다행스럽게도 살인할 만한 상황을 만나지 못했다. 산 속에서 내내 땅굴만 파다가 해방을 맞았으니 말이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총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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