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생활:::

1950년 6월 25일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갑자기 용산 신학교로 피난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북한의 인민군이 38선을 넘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용산 신학교에서 하룻밤 자고나니 이제는 한강다리가 파괴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급하게 짐을 꾸리는데 손발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북에 있는 나의 가족들은 어떻게 됐을까?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1 디모 5:8) 하지만 북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걱정만하고 주저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일단 동료들과 짐을 꾸려 피난길을 떠났다. 한강 다리는 처참하게 파괴돼 있었다. 어쩔수 없이 한강 철로를 걸어서 무작정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거리는 봇따리를 짊어진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원역에서 가까스로 열차를 탄 나는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얼마 후, 황해도 연안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고모와 할머니, 삼촌인 장선흥 신부, 그리고 김영식 신부를 용케도 만날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나의 가족들은 중앙성당에서 기거를 했고, 평양에서 남하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도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고모는 미군 병사들의 빨래를 하거나 부산 자갈치 시장에 나가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근근이 이어 나갔다. 나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현 하롤드(Harold Henry·전 광주교구장)신부 주선으로 미군 병원선에 들어가 복사를 하는 등 군목 신부들의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나는 서울의 대신학교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부제반은 모두 대구로 모이라는 전갈이었다. 나는 대구 남산동에 있던 대구 유스티노 신학교에서 사제가 될 준비를 했다. 대구 유스티노 신학교 옆에는 성모당이 있었는데,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는 그 곳을 자주 찾았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굴을 본따 건축한 성모당은 타향에서 사제의 길을 준비하던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줬다. 나는 그 곳에서 자주 어머니 마리아께 매달려 기도를 하곤 했다. 성모 마리아의 특별한 보살핌 덕분에 나는 전쟁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가다듬고 흔들림없이 목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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