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민단을 맡아주시오 | 이민자들과의 갈등
리우데 자네이루에서의 하룻밤 | 떠나는 사람들 | 산타 마리아 농장 | 불도저 신부 | 서러운 타향살이
마라카낭 축구경기장 |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이삿짐 | 우연히 만난 브라질 대통령 | 불의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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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축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본당 사목에 임하고 있던 1965년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로 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민단을 이끌고 브라질로 가 달라는 주교의 부탁이었다. 『장 신부도 알다시피 브라질 한국 가톨릭 이민회가 시작되어 그동안 안 주교님과 김창석 신부 등 여러분들 노력으로 곧 제1진이 출발하기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정부당국이나 교회 당국에서 꼭 신부 한 분을 인솔자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우리 이민단 실정으로 보더라도 꼭 신부가 한 분 가야 되겠습니다. ...(중략) 안 주교님과 의논한 결과 장 루스(장대익 루도비꼬) 신부를 최적임자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차례에 걸쳐 간곡하게 거절했다. 브라질 이민단은 내가 처음부터 관여했던 일이 아니었는데다가 여러가지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아 골치아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이민은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가 로마에서 브라질의 폰타그로사(Ponta Grossa) 교구의 펠란다(Geraldo Pellanda)주교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노기남 주교가 한국인의 브라질 이민을 제안했고, 펠란다 주교도 이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에 따라 노기남 주교는 한국 가톨릭 이민회를 조직해서 당시 JOC 즉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박성종 지도 신부와 협의해 이민갈 사람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신자가 아닌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브라질 측에서 이민 허가를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이민 떠날 사람들에게 이민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미리 받았는데, 살던 집도 팔고 이민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은 시일이 자꾸 늦춰지자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브라질 이민 사업을 맡고 있던 서울교구는 평양교구장이었던 캐롤 안(George Carroll)주교에게 한국 가톨릭 이민회의 일을 떠맡기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브라질 이민단을 이끌고 갈 지도 신부로 나를 지목했다. 더군다나 한국교회가 브라질 이민단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자 로마에서 공의회에 참석하고 있던 한국교회의 주교들이 브라질 이민단 지도 신부로 나를 추천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서울교구의 노기남 주교를 비롯해서 대구교구의 서정길 주교, 광주교구의 현 하롤드 주교 등 주교 8명의 서명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평양교구 소속 신부였는데다가 제3자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때문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사태를 수습해야한다는 생각이었다. 하루는 교황대사 델 주디체(Antonio del Giudice)주교가 서울 궁정동의 대사관저로 나를 불렀다. 교황대사는 먼저 "주교단이 공동서명한 편지를 받았습니까?"하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교황대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평양교구장인 캐롤 안(George Carroll)주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평양 교구장의 의사를 물었다. 안 주교는 그 전화를 통해 나를 브라질 이민단 지도 신부로 추천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나는 교구장의 명에 따라 그 자리에서 바로 이민단 지도 신부를 맡게 됐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15) 나는 1년동안 브라질 이민단을 지도하기로 기약하고, 후암동 본당 주임자리도 겸임한 채 브라질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내가 브라질에 가 있는 동안 해군 군종신부인 김병도 프란치스코 신부와 후암동 본당 보좌 이승훈 바오로 신부가 나를 대리하긴 했지만 나는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서신으로 지도하는 등 본당 주임 신부 노릇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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