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민단을 맡게 된 나는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때까지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또, 브라질 이민 사업으로 인해 빚어진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브라질 이민을 성공적으로 이뤄내야 했다. 나는 우선, 한국 이민단에 대한 브라질 정부당국의 허가가 떨어지자 일본의 고베(神戶)로 건너가 이민자들에 대한 비자를 발급받았다. 당시 한국에는 브라질 대사관이 상주해 있지 않았을 때였다. 그 해 11월 17일 모든 절차가 끝나고, 모두 53세대 4백여명을 태운 네델란드 선박인 '찌짜렝가'호가 부산항을 출발했다. 드디어 가톨릭 이민회의 제1차 농업 이민단이 브라질 이민 길에 오른 것이다. 부산항에서 이민단을 배웅한 나는 비행기편으로 미국의 뉴욕으로 갔다. 이민단이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미리 이민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뉴욕의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0층에 자리하고 있던 가톨릭 구제회 본부에 들렀다. 여러차례 방문한 끝에 브라질 이민자들에게 필요한 식량 등 구호물자 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파라나(Parana) 주 (州)의 폰타그로사(Ponta Grossa)시(市) 교외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 농장으로 갔다. 이민단이 도착하기 전에 그들이 거주할 집을 지어야 했다. 밤늦게 농장에 도착했는데, 그 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미리 이민 선발대로 들어온 유재선 씨와 장상락 씨가 농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보자 다짜고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그들을 진정시키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척박한 이 곳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서울교구가 약속한 생활비조차 보내주지 않았다면서 그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브라질 이민단을 인솔해야 하는 나는 눈 앞이 캄캄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지만 첫 날부터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다니!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을 지 크게 걱정이 됐다. 나는 결국 그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했다. 도저히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로마 5:3) 어떤 역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결국에는 이 말씀대로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의 고통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은 평생 나를 지탱시켜준 힘이었다. 이민단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상 파울루(Sao Paulo)로 나가 살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유재선 씨는 돈을 줘서 내보내고, 장상락 씨에게는 생활비를 줄테니 나의 일을 돕도록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장상락 씨는 한동안 농장에 남아 있다가 결국 나중에는 산타 마리아 농장을 떠났다. 그는 지금 상 파울루(Sao Paulo)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벨로리존테(Belo Horizonte)에 살고 있다. 갖은 고생 끝에 그 곳에 정착한 그는 지금 상 파울루(Sao Paulo) 한인공동체의 벨로리존테(Belo Horizonte)공소의 회장을 맡고 있다. 10년전 내가 브라질 한인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나는 장상락씨가 회장으로 있는 공소를 방문해 그곳에서 미사를 지냈다. 그 옛날의 인연이 되었던 장상락 씨를 그 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또, 지난 2000년 5월 나는 브라질 한인본당 설정 35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브라질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장상락씨를 만났는데, 나는 그이 덕분에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마존 강 일대를 관광할 수 있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묻어나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