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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나는 지금의 국회 의사당 자리에 있던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유학 길에 올랐다. 나는 캐나다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미국의 메리놀 외방 전교회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들러 그 곳 신부들의 안내를 받기로 돼 있었다. 장호원 본당 주임 레이 신부가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있던 동창 신부인 월츠 신부와 연락을 취해 공항에서 나를 마중하기로 약속을 해 놓긴 했지만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내 수중에 가진 것이라고는 미국인 신부들이 마련해 준 미화 백달러와 샌프란시스코 지부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전부였다. 만일 연락이라도 잘못되는 날이면 영락없이 국제 미아신세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여의도를 출발한 비행기는 동경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기상이 좋지 않아 내가 탄 비행기가 시애틀로 갔다가 샌프란시스코로 회항하는 바람에 도착시간이 예정시간을 훨씬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마중나온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 지 난감하기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 메리놀 외방전교회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전화를 해야했다. 그런데 영 자신이 없었다. 오는 길에 들렀던 메리놀회 동경 지부에서 미리 연습한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누가 전화를 받는데 말이 너무 빨라 무슨 말을 하는 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얼른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이를 어쩌나 망설이던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대뜸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뭐라고 말은 해야 하는데 좀처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미국인은 내 뜻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쪽지를 받아들더니 나를 대신해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수화기를 넘겨줬다. 그 쪽에서는 뭐라고 얘길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귓전에는 "Stay there!"라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때 내가 전화를 걸던 곳은 공항 시계탑 아래였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시계탑아래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누가 날 알아보고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돌아봤더니, 거대한 몸집의 백인 한 사람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 사람이 마치 마적대장같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나를 보자 "당신, 장 신부냐?"하고 물었다. 험상궂게 생긴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월츠 신부를 따라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샌프란시스코 지부로 갔다. 그 때 월츠 신부를 기다리면서 주소가 적힌 쪽지를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봤는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리놀 외방전교회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주소를 잊지 않고 있다. 주소는 Webster street 25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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