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무슨 일이든 지 해서 용돈을 벌어야 했다. 여름 방학이
되자마자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대학 인근에 있던 골프연습장이 첫 일터였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주워
모으고, 청소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보냈다. 골프라는 운동과도 자연스럽게 친숙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포츠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골퍼들이 공을 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처음에는 골프채를 잡는 법조차 알지 못했던 나였지만
한가할 때마다 골프채를 들고서 골퍼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본대로 스윙과 퍼팅 연습도 했다. 나와 골프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골프를 즐겼다. 골프는 우리나라에서 부유층이나 권력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스포츠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부가 골프를 친다고 하면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였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골프를 알게 됐고, 거부감 없이 골프를 계속할 수 있었다.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우스꽝스럽다고 놀려대지만 나는 골프를 사랑한다. 우선, 하루종일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거닐면서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좋다. 또, 가까운 사람들과 경기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는 즐겁다. 골프에는 힘껏 골프채를 휘둘러 홈런을
날리는 통쾌함이 있고, 내가 친 공이 날아가는 방향과 낙하지점을 확인할 때 느끼는 짜릿한 긴장감이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목적지를 향해가는 골프라는 스포츠는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는 점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40년 가까이
골프를 즐기면서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홀인원(Hole in one)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아주 운이 좋았던 셈이다. 1986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 컨트리 클럽에서 첫 번째 홀인원을 기록한 이 후에 1992년과 1993년에도 홀인원을 쳤다. 1992년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골드 컨트리 클럽에서 두 번째 홀인원을 쳤을 때는 부상으로 하와이 여행을 갈 기회를 얻었다. 비행기표는 대한항공에서
협찬을 했다. 하와이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는데, 마침 바로 옆자리에 대한항공의 조중훈 회장이 탔다. 자신은 하와이 이민 9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조중훈 회장은 나에게 "어디에 가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홀인원을
해서 하와이에 가게 됐습니다."하고 말했다. 조중훈 회장은 마치 자신이 홀인원을 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직접 나를
안내해 조종실을 비롯한 기내 곳곳을 구경시켜줬다. 홀인원을 했다는 이유로 나는 조 회장의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기 골프도 곧잘 했는데, 예전에 함께 골프를 치던 동료 사제들은 지금도 나만 보면, 돈을 돌려달라고 한다. 그들은 내기 골프를
해서 나에게 잃은 돈을 모두 합치면, 미사 예물로 받은 액수보다고 많을 거라며 농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남서울 컨트리 클럽 대표를
다섯 차례나 지냈으며, 한국 시니어 골프 선수권 대회에도 여러 차례 출전해서 1985년 열린 제14회 대회때에는 준우승을 한 경험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