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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스코시아(Nova Scotia)는 불어로 뉴 스코틀랜드라는 뜻으로, 캐나다의 동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반도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이곳에서는 어느 쪽으로 가든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환경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했으며, 비옥한 농토와 천연 자원이 많아 농업과 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 곳도 경제적인 빈곤으로 어렵게 생활하던 곳이었다.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갔고, 인구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세인트 프란시스 세비어 대학(St. Francis Xavier University)을 중심으로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안티고니쉬 무브먼트 (Antigonish Movement)이다. 탐킨스(James Tompkins)박사는 몇몇 학자들과 함께 농어촌의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안티고니쉬 운동의 청사진을 마련했고, 코디(M. Coady)박사는 협동조합 운동가들을 배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안티고니쉬 타운을 포함한 노바스코시아 주는 부유한 동네로 그 모습을 탈바꿈했다. 안티고니쉬 운동의 성공은 당시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희소식이었다.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안티고니쉬 운동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나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이러한 안티고니쉬의 모든 것이 나에게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공장의 기계화와 조직적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모습은 내가 생각할 수 조차없었던 세계였다. 지게지고, 뼈빠지게 농사지어도 높은 금리와 이자에 허덕이는 우리네 가난한 농부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이 운동을 한국에서도 펼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학교 강의도 중요하긴 했지만 나는 노바스코시아 일대를 돌아다니며 협동조합들을 견학하고 실습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학원과정을 마치고 세비어 대학을 떠날 때 코디 박사는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해서 가난을 구제할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하되, 계속해서 확실하게 하십시오." 이 말이 유수한 협동조합 운동가를 길러낸 코디 박사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조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