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자동차가 없었던 나는 기차로 통학을 했다. 그 날도 포담 대학에 가기위해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두 분이 나에게 다가 오더니 "Are you Japanese?"하고 물었다. "No."라고 했더니
다시 "Are you Chinese?" 했다. "No! I am Korean!"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자신들은 오하이오주에 사는 자매라고 소개를 하면서 뉴욕시를 관광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가톨릭 신자이며, 일본의
나가사키 신학교의 신학생들을 돕는 후원회 회원이라고 덧붙였다. 로만칼라를 하고 있는 동양인 신부를 보고, 혹시나 자신들이 후원을
하고 있는 일본인 사제가 아닌가 해서 말을 붙였다는 것이었다. 메리는 헤어지면서 자신의 주소가 적힌 쪽지와 함께 5달러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이 후 나는 메리와 알리스 자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띄웠고, 나중에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메리의 가정은 남편이 조그만 이발소를 운영해 살림을 꾸려가는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고, 가족 모두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들이었다.
자녀가 없었던 메리 부부는 이웃에 조카 자식들과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동생인 알리스는 혼자 사는 독신녀였다. 하지만 메리와 알리스
자매는 비록 자신들의 소생은 아니었지만 조카들을 자녀로 여기고, 손자, 손녀와 함께 아주 다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뉴욕 시가지의
높다란 빌딩과 네온 사인의 화려한 불빛에 눌려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던 보잘 것 없는 동양인 신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나는
그들 덕분에 오랜만에 가정의 따뜻함과 평안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유학생활이 힘이 들어 지칠 때면 그들을 찾아 위로를
받았다. 나와의 인연이 계기가 돼 윤치삼 신부나 김창석 신부 등 한국인 사제들도 이 집에 며물면서 메리와 알리스 자매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기차역에서 시작된 메리와 알리스 자매와의 인연은 내가 귀국한 이 후에도 계속됐다. 그들은 가족들의 근황을 적은 안부
편지를 꾸준히 보내왔다. 편지에는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사진도 꼭 동봉돼 있었다. 내가 후암동 주임 신부로 있을 때는 성당을
신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건축 기금을 보내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토록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이 은인들에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일은 공사가 진척되는 상황을 사진에 담아 보내는 일 밖에 없었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줬던 메리와 알리스 자매는 내게는 양어머니와 다름없는 고마운 분들이었다. 또,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은 안토니 성당 주임을
지낸 차일스 보일 몬시뇰이다. 자동차가 없어서 항상 걸어 다니는 나를 위해 자동차를 한 대 마련해 줬다. 하루는 본당 신자 한 사람이
중고차 한 대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그냥 드릴테니 사용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 신자는 자신이 차를 처분한다고 하니까 차일스 보일
몬시뇰이 매일 새벽마다 미사를 봉헌해 주는 한국인 신부에게 주라고 했다면서 자동차를 두고 갔다. 비록 다 찌그러진 고물차였지만 내가
얼마나 감지덕지했는 지 모른다. 뉴욕에서의 자동차없는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50달러를 들여 자동차를 수리해서
학교 갈때나 인근 성당을 방문할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귀국할 때는 차일스 보일 몬시뇰의 조카 딸에게 150달러를 주고 팔아서
여비에 보탤 수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