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1월12일 53세대 4백여명을 태운 이민선은 드디어 55일간의 긴 항해 끝에 브라질의 파라나(Parana)주(州)의 '파라나과(Paranagua)'항에
도착했다. 이민단 일행은 이 곳에서 기차를 타고 '까스트로(Castro)'시(市)로 갔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자동차로 달려서
약 세시간 정도 더 가야하는 폰타그로사(Ponta Grossa)시(市) 교외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 농장이었다.
하지만 거처할 곳이 그 때까지 마련되지 않아 이민단 일행은 '까스트로(Castro)'시의 육군 막사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가옥이 완공될
날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집이 한 채 두 채 완공되고, 각 세대별로 농장에 입주했다. 3천평 정도의 땅에 집이 한채씩 들어섰다.
집은 가로 6m에 세로 7m의 면적에 4개의 방과 거실, 주방 등을 갖춘 목조 가옥이었다. 한 채를 짓는데 미화 6백83달러 정도가
들었다. 한 가족이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는,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주택이었다. 맨 아랫 집에서 윗 집까지 가는데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렸다. 나중에 13세대와 3세대가 더 들어와 모두 69세대가 이 곳에서 처음으로 한인 공동체를 이뤘다. 그 해 3월에는 목조
건물을 개축해서 성당도 마련하고 사제관도 지었다. 성당 건립에는 미화 2천백87달러, 사제관을 짓는데는 2백달러가 들었다. 학교를
지을 때는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몰려와 지붕까지 올린 건물이 무너지고 말았다. 거의 다 지은 건물을 또다시 지어야 했다. 그나마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막상 농장에 입주하고 보니 막막했다. 농장이라고 정해놓은 땅이 그야말로 척박하기
이를데 없었기 때문이다. 말이 농업이민이지 이민자들 가운데 한국에서 농사를 짓다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군장성
출신이나 장사꾼들이 많았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는 한국 땅이 싫어서 이민을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항에서 만쉐떼 신문사 기자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까? 전혀 농사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농사 지을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온갖 풀과
나무로 우거진 숲을 해치고 땅을 개간하는 것이 가능할 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이름모를 독충과 열대 기후에 적응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만리밖 타향도 마다않은 이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살아 남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개간하는
동안 먹을 것을 충당하는 것도 문제였다. 당장은 미국 가톨릭 구제회에서 지원해준 밀가루, 옥수수가루, 소트닝 같은 것으로 끼니를
이을 수 있겠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저런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급기야 문제가 생겼다. 첫 날밤부터
몇몇 사람들이 짐을 싸가지고 농장을 떠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사람들을 붙들고 하소연했다. 어떻게 해서든 3년이라는
계약기간을 지켜야한다고. 만약에 3년안에 농장을 이탈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한국인은 더 이상 브라질로 이민을 올 수가 없으니
이 계약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은행을 통해 한국의 이민자들에게 영농자금을 빌려줬는데,
이것을 볼모로 농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떠나려는 이들을 농장에 묶어 두지 못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