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총이 없습니다.:::

본당 주임이었던 레이(James H. Ray) 신부에게는 누이가 한 사람 있었는데, 미국의 공군 대령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 5공군 사령관은 장호원 본당을 자주 방문했다. 그리고 식량 등 갖가지 구호 물자들을 가지고 와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장호원 식구들에게 도움을 주곤 했다. 겨울이면 난방용 기름까지 실어다 날랐다. 레이 신부가 아플 때는 오산의 미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루는 사령관이 헬리콥터를 타고 장호원 본당을 방문했다. 대령 등 몇몇 부관들과 함께였다. 사령관 일행은 사냥을 하고 싶다고 했다. 레이 신부는 자신은 사냥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근 지리에도 밝지 않기 때문에 동행하기 힘들다고 했다. 나 또한 사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령관 일행은 나에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곳까지 길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대뜸 "나는 총이 없습니다."했다. 사령관 일행은 여분의 총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그들을 성당 인근의 오갑산으로 안내했다. 사령관 일행은 그 날 노루 한 마리와 꿩 몇마리를 잡았다. 나도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엽총을 가지고 사냥이라는 걸 해봤는데, 제법 재미있는 놀이였다. 사냥에 재미를 붙인 나는 그 후로도 성당에서 키우던 바둑이와 복사 꼬마들을 데리고 가끔 성당 바로 뒤에 있는 매산으로 사냥을 다니곤 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산을 한바퀴 돌면, 꿩 몇마리는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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