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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협동 조합 태동 |서울대교구 사제로 입적|
성전을 지어 주님의 이름을 빛내자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 |꼬마 친구들 | "국제결혼은 하지 마십시오."|영부인에 대한 기억|도둑놈을 잡아라! .............................................................................................................................. |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하고 보니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공사비 갚을 일도 큰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신앙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또, 나 만 믿고 따라주는 신자들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성전을 제대로 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시 감 독을 철저히 했다. 미사 봉헌만 끝나면, 나는 공사 현장에서 일꾼들과 함께 지냈다. 콘크리트를 친 날이면 양생 이 잘되도록 밤새도록 물을 뿌려댔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 쓴 내 모습은 영락없이 막노동자였 다. 일꾼들과 한데 어울려 일하는 나에게 "본당 신부가 누구냐?"며 묻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공 사를 시작한 지 1년 3개월만에 초현대식 건물이 완성됐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보일러 시설을 해 놓아 실내에 서도 더운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인들중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직접 더운 물로 목욕을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후암동 성당이 이처럼 장안의 화제가 되자 성전 건립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본당에서 견학오는 일도 잦아졌다. 인근의 서울지역 본당 뿐만 아니라 멀리 부산에서도 사람들이 올라왔다. 후암동 성당은 요즘 건 립된 성전들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1964년 12월 22일 후암동 성당을 하느 님께 봉헌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와 평양교구장인 캐롤 안(George Carroll)주 교를 비롯해 교구내 성직자들 그리고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 씨와 장면 박사 등 많은 신자들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역사적인 새 성전 축복식이 성대하게 거행된 것이다. 해군 악대의 힘찬 연주는 새 성전을 맞는 기쁨을 온 누리에 알렸다. 성전을 신축하고 난 뒤에는 성당의 마당과 성당 입구의 길도 말끔하게 포장했다. 그리고 하 느님의 거룩한 성전을 아름다운 예술품들로 꾸몄다.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의 언덕받이에 자리 잡은 후암동 성 당 마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찬미 예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또, 정원석에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잎을 물고 나르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또, 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정원수들사이에는 단아한 자태를 자랑 하는 무염시태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모상은 루르드의 성모상을 재현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성전 중 앙에는 오석(烏石)을 깍아 만든 제단을 놓았는데, 성찬의 신비를 상징하는 밀이삭과 포도를 양각해 장식했다. 이 모든 예술품들은 본당 총회장이었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이순석 바오로 요셉씨의 작품이다. 성전 내 부의 벽 3면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김교만 아오스딩 교수의 작품인데, 이순 석 교수의 제자였던 김교만 교수는 스승에게 자문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수난과 고통 의 여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잘 표현한 이 작품은 지난 1968년 공예부문에서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여한 것 으로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