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을 지어 주님의 이름을 빛내자:::

나는 1963년 서울대교구 후암동 본당 주임으로 발령을 받았다. 사제로 서품된 지 13년만에 나는 처음으로 본당 주임으로 사목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후암동 본당은 그 당시 일제때의 적산가옥을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사찰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5층 석탑과 잘 가꾸어진 정원수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목조 건물인 성전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새로 짓는 것이 불가피해 보였다. 나는 우선, 새 성전 신축을 위해 이미 조직돼 있던 성당 건립 기성회를 보강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성전을 신축한다는 소식에 신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너도 나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기에 큰 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신자들은 불평을 쏟아냈다. 처음으로 본당 주임을 맡아 의욕이 왕성했던 나는 성전 신축 공사를 강행했다. 신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거룩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명감?문이었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안 신부에게 자문을 구하고, 왕십리 본당과 대구의 파티마 병원을 설계한 나상진 씨에게 성당 설계도를 맡겼다. 그리고 시공 업체로는 공영건업주식회사를 선정했다. 공영건업은 나중에 절두산 성당과 기념관을 지은 곳이다. 고향이 원산이었던 공영건업의 김인상 요한 사장은 나와 막역한 사이였다.나는 그에게 거의 공사를 떠맡겼다. 예산을 확보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인상 사장에게 책임지고 성전을 완공해 달라고 강권했다 공사비는 돈이 모이는대로 갚기로 했다. 거의 일방적인 계약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김인상 사장은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끝내 김인상 사장이 공사비의 상당한 부분을 헌납하다시피 했다. 설계도가 완성되자 성당으로 사용하던 목조 건물에 대한 철거작업이 시작됐고, 1963년 9월 11일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새 성전 신축 기공식이 거행됐다. 이 때부터 본당 신자들은 대대적인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나는 미국에서 돌아올 때 성 안토니 성당의 신자들이 선물한 지프를 팔아 기금 마련에 앞장섰다. 또 유학시절에 사귄 뉴욕의 마운트 버논(Mount Vernon)의 성심천주교회(Curch of the Sacred Heart)의 머덕 몬시뇰과 성 안토니 성당(Curch of St. Anthony)의 보일 몬시뇰을 통해 미국의 교우들로부터 수천 달러의 돈을 모금했다. 메리와 알리스 자매도 성전 신축 기금을 여러차례 보내왔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모금활동에 나서는 나의 모습을 보고 성전 신축에 반대하던 신자들이 하나 둘씩 따라주기 시작했다. 바자를 열어 생활 필수품을 판매하는 한편, 신자 가정에서는 식사 때마다 한줌씩의 쌀을 덜어내 모았다가 팔아서 공사비에 보탰다. 성당이 완공된 뒤에도 빚을 갚기 위해 새 성전의 전경을 담은 그림 엽서를 외국에 보내 모금 활동에 이용했다. 신자들은 또, 이웃 벽돌집의 철거된 건물에서 시멘트 조각을 모아 기초 공사 때 바닥에 깔기도 하고, 벽돌 등 각종 건축 자재를 운반하는 등의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벽돌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 (2사무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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