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로수용소에서의
고된 사목생활 가운데서도 나는 가끔씩 시간을 내서 인근의 본당으로 신부들을 찾아가 휴식을 취하곤 했다. 오기선 신부가 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으로 있을 때였다. 오기선 신부는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 신의주 본당 주임을 한 적이 있어서 나와 친분이 꽤 두터운 편이었다.
나는 모처럼 시간을 내서 대전으로 가 오기선 신부를 만났다. 그런데 그 날 길가 자전거점 앞을 지나는데 멋진 오토바이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정말 탐이 났다. 유달리 큰 바퀴에 장교석까지 달린 것이 군용 오토바이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점 주인은
인민군 장교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오토바이를 샀다. 그리고 장교석을 떼어내고 수리를 해서 곧장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넓은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왠만큼 자신이 생기자 나는 거리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갔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에 나는 브레이크를 놓쳐 버렸고, 내 오토바이는 그만 길모퉁이에 있던 다방을 들이받고 말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얼마나 놀랐는 지 모른다.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오기선
신부는 "뭐가 그렇게 겁나느냐."며 나를 겁쟁이라고 놀려댔다. 그리고 자신이 사고당한 이야기를 무슨 무용담 늘어놓듯이
하는 것이 아닌가. 지프를 타다가 세 번이나 사고가 났었다는 둥,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둥 그런데도 자신은 아직도 운전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오기가 생겼다. 그 다음날 나는 보란 듯이 다친 얼굴을 붕대로 싸맨 채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리고 대전에서
논산까지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 오토바이 사고와 관련한 이야기가 또 있다. 한 번은 대전 성모병원 원장을
지낸 유봉운 신부가 보좌신부로 있던 논산본당에 놀러 갔다. 우리는 함께 그 오토바이를 타고 규암 공소에 갔다. 내가 앞에 앉아 운전을
했고, 유 신부는 내 등에 꼭 붙어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 속도가 나자 유 신부는 "야호! 신난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갑자기 유 신부가 쓰고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모자를 주워야겠다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냥 목적지까지
달려갔다. 규암 공소에 도착해서 보니 브레이크 작동이 신통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오토바이와 함께 논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간신히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태워달라고 사정을 했다.
고장난 오토바이를 트럭에 싣고 돌아온 나는 곧장 오토바이를 수리해 팔아버렸다. 평소에 내 오토바이가 탐이 나서 자신의 지프랑 바꾸자고
노래를 하던 논산 포로수용소 병기부장에게 팔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