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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된 나에게 주어진 첫 소명은 평양교구 진남포 본당의 보좌였다. 나는 그 해 12월25일 예수성탄 대축일을 서울에서 지낸 뒤 평양으로 갔다. 첫 부임지인 진남포 성당으로 갈 방도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아직도 전쟁 중인 탓에 진남포까지 무사히 갈수 있을까 적지 않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나는 일단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곳에 가보기로 작정을 했다. 그 당시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였던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캐롤 안(George Carroll)주교가 유엔군 군목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안 주교는 나에게 미군 군용 비행기를 알선해 줬다. 그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것을 타보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나는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미군 군용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교구 중화본당 주임을 지낸 강현홍 신부도 동행했다. 그 날따라 기후가 몹시 좋지 않았다. 모란봉 아래 사동에 있던 평양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꽁꽁 얼어붙은 활주로
때문에 착륙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짐칸에 앉아 있던 나와 강 신부는 처음 타보는 비행기인데다가 기체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멀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두 사람 모두 구토를 하고 초죽음이 됐던 기억이 난다. 평양에 간 나는 일단 평양교구 주교관에
머물면서 진남포까지 어떻게 들어갈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양에 간 지 사흘쯤 지난 어느 날, 난데없는 비보가 전해졌다. 중공군이 평양에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신의주까지 갔던 국군이 중공군에게 밀려 다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진남포에는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하지만 걱정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안(George Carroll) 주교는 나에게 미군 지프를 마련해 줬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후퇴하는 유엔군과 함께 다시 서울로 내려와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하려 했던 본당 사목활동은 전쟁으로 인해 시작도 못해 본 채 막을 내려야 했다. 첫 부임지인 평양교구 진남포 성당에는 아직까지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세월만 반백년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남북한의 왕래가 자유로와지면 그리운 내 고향 신의주보다,
또 그렇게 아름답던 금강산보다, 제일 먼저 달려가 보고 싶은 곳이 바로 진남포 성당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