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피난생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다시 역전되고 있었다. 서울이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나는 인천항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미군 군함 LST에 승선해 제주도로 향했다. 김창석, 백응복 신부도 함께였다. 육지에서는 전쟁으로 난리가 났지만 그 때까지만해도 제주도는 전쟁의 흔적이나 피난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평온한 곳이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 가 본 제주도의 평화로움과 이국적인 풍경은 나를 사로 잡았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뒤따라 들어오는 피난민들이 거주할 수용소를 마련하기 위해 동부서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읍에다가 임시 수용소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나는 당시 삼도리 성당 주임이었던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손 신부와 함께 천막을 구해 비바람을 피할 숙소를 마련하고, 남상희 해군대령의 지프를 타고 다니며 미국의 구호물자를 피난민들에게 배급했다. 함께 간 김창석 신부와 백응복 신부도 모슬포와 신창에서 각각 그 곳 신부들의 사목을 도우면서 피난민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제주의 표선이라는 지역에는 임시 신학교가 세워졌는데, 인근 조천이라는 곳에서 공비가 출현하는 바람에 얼마가지 않아 신학교도 제주읍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달 남짓 제주도에서 피난민을 위해 일하던 나는 김효신 신부에게 하던 일을 맡기고 제주도를 떠나야 했다. 새로운 소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새 사목지인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가기 위해 나는 부산행 배에 올랐다. 제주도에 올 때와는 달리 백여명 정도가 함께 탈수 있는 아주 작은 배를 타고 갔는데, 이 배는 작은 풍랑에도 요동을 쳤다. 함께 승선한 사람들은 배멀미로 무척 고생했다. 제주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30시간 이상이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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