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대가 무너졌어요!"|시흥본당 분가|"우리 땅, 돌려주시오."|집짓는 사제
종로성당을 지켜라|노동자들의 보루|빚하나 없이 지은 성전|영혼들의 안식처|"이놈들아! 성전에서 내려와!"
시장 사목 활성화|잠원동 교육관 건립|주옥같은 음악을 선사한 '파티마 성가단'|미사를 집전하다 쓰러지다
병상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올림픽 대회| 마지막 본당 수유1동|귀양살이가 따로 없다|사제생활 50년, 금경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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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 천년기의 첫 해인 2000년 11월 21일은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울대교구 잠원동 성당은 나의 금경축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찼다. 나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제단에 올랐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광주대교구장을 지낸 윤공희 대주교와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를 비롯해 동료 사제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신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거나 지난 50년 사목활동을 함꼐 했던 잊지 못할 동반자들이었다. "날 어여삐 여기소서. 참 생명을 주시는 주, 나 주님을 믿사오며, 주님께 나아가리. 평화 평화 평화를 주옵소서. 그 영원한 참 평화를 우리게 주옵소서." 지난 반세기동안 나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줬던 교우들이 내 앞에 서서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 자리도 있을 수 없었으리라.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내가 처음으로 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던 후암동 본당을 비롯해서 대방동, 상도동, 종로, 잠원동, 수유1동 등 이렇게 여섯 개 본당의 낯익은 얼굴들이 이번에도 노사제를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전에도 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줬었다. 대방동 본당 신자들은 25년전, 나에게 은경축 잔치상을 성대하게 차려줬다. 성당 마당에 천막을 치고 큰 가마솥을 걸어 국을 끓이고, 갖가지 음식들을 마련하는 정성을 보여줬다. 사회는 그 당시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이은관씨가 맡았는데, 잔치가 무르익자 어깨 춤이 절로 나왔다.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도 덩실 덩실 춤을 춰서 흥을 돋궜다. 잔치상 외에도 신자들은 '브리사' 승용차라는 큰 선물을 나에게 안겨줬다. 종로 본당 신자들은 마치 자녀들이 어버이의 잔치상을 마련하듯 정성을 다해 나의 환갑잔치를 열어줬고, 잠원동 교우들은 사제 서품 40주년과 칠순 잔치상을 차려 나를 기쁘게 해 줬었다. 은경축이나 금경축을 지내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당시 사제서품 40주년 기념식을 한 것은 한국교회 사제로서는 내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우리교회에서도 '40'이라는 숫자는 그 의미가 아주 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광야에서 단식을 하셨고, 부활하신 후 천상 아버지에게 가시기 전 40일동안 지상에 머무셨다. 그리고 구약에서 하느님은 죄를 많이 범한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서 40일동안 밤낮으로 비를 내리셨고, 모세도 십계판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에서 40일동안 지내야 했다. 엘리아 또한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호렙산에서 40일을 지냈다. 이렇듯 '40일'이라는 숫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또,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나는 사제 생활 40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제 서품 40주년 행사 때 광주대교구의 김정용 안토니오 신부는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하여간 도깨비 신부님은 모든 일을 앞서서 행하는 선구자"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그 때까지 아무도 사제서품 40주년 기념행사를 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여기 참석하신 모든 신부님들께서도 40주년 행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경축은 대개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 맞게 되는데, 늙고 기운 없을 때 이런 행사를 여는 것보다 이렇게 본당에 있을 때 교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가 터져왔다. 이 후 사제서품 40주년을 기념하는 사제들이 늘어났다. 지난 1998년에는 수유1동 본당신자들이 갑자기 일선에서 떠나게 된 나를 위해 은퇴식도 성대하게 마련해줬었다. 어느 부모가 매번 이렇게 성대한 잔치상을 받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내가 주님을 모시는 목자의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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