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집전하다 쓰러지다:::

1988년 2월 22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 가운데 하나다. 내가 새벽미사를 봉헌하다 제대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오른쪽이 마비돼 수족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사를 봉헌하던 신자들이 화들짝 놀라 나에게 달려 왔다. 신자들의 부축을 받아 강남 성모 병원으로 가 입원을 했다.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가졌다고 자신했던 내가, 그리고 생전 병원이라고는 발걸음도 않던 내가 입원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정밀검사를 받았다. 나는 밥만 잘 먹으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 줄 알았다. 그리고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세월은 속일 수 없는가 보다. 나는 선배나 후배 신부들이 아프다고 하면, "왜, 아프냐"고 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데 내가 발병하고 보니 내 말을 듣고 마음 아팠을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의사는 뇌졸증이라고 했다. 오른 쪽에 마비가 와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반신불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했다. 그제서야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내가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는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목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자괴감이 생겼다. 혹시나 일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나는 보름 만에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 지 모른다. 조금은 불편한 구석도 있었지만 정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선, 후배 사제들과 교우들은 줄을 지어 입원실을 찾아와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를 봉헌했다. 또, 성당에서도 미사봉헌 때마다 나를 위해 교우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들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에 다시 일어섰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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