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하나 없이 지은 성전:::

나는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묘안을 짜냈다. 종로성당이 소유하고 있던 묘지를 대대적으로 조성해 묘지를 팔면 어느 정도 공사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묘지 구획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만해도 경기도 광탄면에 있는 종로 본당 묘지는 용인의 교구 묘원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대교구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나는 새벽 미사 집전하고 나면 매일같이 광탄으로 달려가 축대 공사를 감독했다. 한밤중이 돼서 사제관으로 돌아와 눈을 붙이고, 해가 뜨면 묘지로 달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 덕분에 묘지를 팔아 그 돈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또, 명동이나 대치동 등 서울시내의 10여군데 본당을 돌아다니면서 모금활동도 벌였다. 본당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정성을 모았다. 신자들은 서울 동성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큰 규모의 바자를 개최했다. 물품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신자들의 상당수가 상인들이었기에 자신들의 가게에서 파는 다양한 상품들을 기꺼이 내놓았다.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뽀빠이 이상용 씨를 섭외해 사회를 맡겼고, 포니 승용차와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을 경품으로 내걸고 교구내 본당에 협조 공문도 띠웠다. 바자는 대성공이었다. 또, 포니 승용차에 당첨된 신자는 성전건립기금에 보태라며 자동차를 도로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성전이 완공될 무렵, 공사비가 모두 모였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종로 본당 신자들은 빚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새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신자들의 기도와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살림이 넉넉치 않은 가운데서도 정성을 다해 성전 건립에 발벗고 나서준 신자들이 얼마나 사무치게 고마웠는 지 모른다. 그들은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긴 하느님의 백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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