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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대가
무너졌어요!"|시흥본당 분가|"우리
땅, 돌려주시오."|집짓는 사제
종로성당을 지켜라|노동자들의 보루|빚하나 없이 지은 성전|영혼들의 안식처|"이놈들아! 성전에서 내려와!" 시장 사목 활성화|잠원동 교육관 건립|주옥같은 음악을 선사한 '파티마 성가단'|미사를 집전하다 쓰러지다 병상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올림픽 대회| 마지막 본당 수유1동|귀양살이가 따로 없다|사제생활 50년, 금경축 .............................................................................................................................. |
종로성당에 있으면서 남다르게 관심을 쏟았던 사목활동은 뭐니 뭐니해도 시장사목 활성화였다. 본당 신자들의 상당수가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해도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 본당이 설립돼 있지 않아 시장에서 일하는 교우들은 신앙 생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상인들은 낮과 밤이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로 신앙생활을 소홀히하기 쉬웠고, 자칫 냉담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우선, 시장에서 일하는 청년 신자들을 몇 명모아 단체를 조직했다. 단체의 이름은 무역상의 아들이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서 '프란치스코회'로 정했다. 나는 '프란치스코회'를 앞세워 시장에 있는 교우들을 찾아 나섰다. 관할지역이었던 동대문 시장은 물론 남대문 시장 구석 구석을 뒤졌다. 그리고 반모임을 구성했다. 교적이 어디에 있든 상관이 없었다. 신자들 스스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친목도모를 위한 조기 축구회도 만들었다. 아울러 조기 축구회 활성화를 위해 추기경배 축구대회도 열었다. 여기에는 교우가 아닌 팀들도 출전을 할 수 있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시장 상인들에게 천주교회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간접 선교의 효과도 노린 것이다. 서울 동성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회 때 멋진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입장하던 패기 만만했던 시장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때 그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