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1년 가을, 나는 종로성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 당시 성당 주변지역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성당 바로 뒷골목이 그 유명한 윤락가가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해만 떨어지면 윤락녀들이 골목어귀에 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꼬 2:17)"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명한 바를 알고 있긴 하지만 신자들은 물론이고, 특히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 만무했다. 또, 그 일대는 서울 시내 중심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좁은 도로에다 조선시대때 들어선 한옥과 낙후된
상가 건물이 밀집돼 있어서 항상 장사꾼들이 들끓는, 복잡하고 부산한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 일대에 대한 도시개발 계획안을
내놓았다. 오래된 건물을 정리해 도로를 확대하고, 성당 바로 옆에 자리해 있던 종묘를 공원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중심에
자리해 있던 종로 성당도 도시 개발 계획안에 따라 철거 대상에 포함됐다. 명동성당에서 분할돼 나와 인근 지역 복음화의 산실 역할을
했던 유서깊은 '하느님의 집'이 철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종로 성당은 보존돼야 했다. 나는 담당공무원은 물론이고,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염보현씨까지 찾아갔다.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이종찬씨도 만났다. 종로성당만큼은 보존돼야 한다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특히 그 때 만났던 도시개발 계획 실무를 담당했던 서울시 도시계획과의 하 계장의 은혜는 잊을 수가 없다. 하 계장은 성당
보존을 위해 설계도를 다시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종로성당 터만은 지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성당터 일부가 도시
계획에 포함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대신 서울시는 전매청 옆에 붙어있던 서울시 소유의 땅을 매입해 성당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성당 땅은 헐 값에 시에 넘겼는데, 새로 매입한 땅은 훨씬 비싼 값을 치뤄야 했다. 억울한 일이었지만 성당을 보존하게 된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 일대에 대한 철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동네는 아수라장이 됐다. 서울시의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사흘이 멀다하고 자살 소동이 빚어졌다. 또, 동네 집들이 하나 둘 철거되자 갈
곳없는 동네의 쥐들이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성당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벌떼처럼 모여있는 쥐들를 보고 화들짝 놀라 뛰쳐 나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성당 곳곳에 쥐약과 쥐덫을 놓았는데 그 바람에 키우던 강아지만 쥐약을 먹고 애꿎게 죽어버렸다.
철거 작업은 일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그 와중에 성당 유치원에 불이 났다. 전기 누전에 의한 것이었다. 파자마 바람으로 뛰쳐나간
나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타오르는 화마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불
잘난다. 훨∼훨 타거라.훨∼훨"하고 외쳤댔다. 사람들은 '불난데 부채질 한다'고 야단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불이 나면 그 집이 흥한다는 속설이 있지 않던가' 성당 신축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나는 그저 이
속설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렇듯 나는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남들은 태평하고 무사안일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곤경에
빠질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믿고 나아가면, 항상 아버지께서는
모든 걸 들어주셨던 까닭이다. 본격적인 성전 신축에 들어갔다. 옛 성전 건물을 말끔히 헐어내고 새 집을 지어야 했으므로, 성당 식구들도
모두 이사를 갔다. 창경궁 뒷편 상가 건물을 얻어 임시 성전으로 사용했다. 사제관은 낙원 상가 아파트로, 수녀원은 세운 상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종로 본당 신자들은 이렇게 피난 생활을 1년반 정도해야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