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살이가 따로 없다:::

나는 은퇴 이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 지에 대해서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었다. 미래를 꼼꼼하게 설계하고 준비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앞으로 3년 정도 더 일선에서 사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직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하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야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거주할 집을 구하는 일이 시급했다. 여기 저기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내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하루는 집을 얻으러 다니다가 가락동 성당에 들렀다. 성당 마당에 차를 세우기 위해 대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성당 직원이 성당마당에는 주차할 수 없으니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마침 그 곳 사무장을 알고 지내던터라 그이를 찾았는데, 그날 따라 외출하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여느 때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나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하느님의 집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속에서 외풍없이 살던 내가 마치 사지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IMF 경제위기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내 심정이 그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며칠 뒤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사온 첫 날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치 외딴 곳에 귀양살이 온 것 같았다. 또, 높은 곳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기분이 들었다. "사제가 은퇴하는 줄 알았으면, 사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던 동료 신부의 말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 갈 데는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서울대교구 신천동 본당의 '제2보좌 신부(?)'를 하면서 지낸다. 주일마다 그 곳에서 낮 12시 미사를 집전하는 일이 나의 주된 사목활동이다. 은퇴를 하긴 했지만 지난 반세기동안 사제라는 외길 인생을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느님께 제사드리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느님 사업을 위해 살고 싶다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은퇴 사제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사제가 일선에서 일단 물러나고 나면 그 모든 것으로 부터 단절된다. 내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으면 교회에서 조차 소외되기 쉬운 것이 은퇴 사제들의 처지이다. 노파심이라고 여겨도 좋다. 우리 교회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은퇴 사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체계적으로 마련해 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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